힐링은 미봉책

 

오랜만에 포스팅이네요. 사실 어제부터 개인 블로그를 만들어 포스팅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포스팅 내용에 ‘괜찮다’라는 말이 자주 들어가서 갑자기 생각이 났네요 ㅎㅎㅎ 본 블로그의 주제와는 상관없는 내용이지만 그동안 업데이트가 없었으니 똑같은 내용으로 포스팅합니다. 우리 모두 괜찮아요~

힐링은 미봉책

힐링은 퉁치는 개념이에요. 진단을 해야 하는데 정확하게 무슨 병인지도 모르고 미봉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외과의사가 수술하다가 ‘아, 이건 지금 자르면 안 되겠다, 복잡하다.’ 해서 다시 덮는 경우가 있어요. 힐링은 그런 것 같아요. 메스를 들이 대려면 정확하게 진단해서 뭘 잘라내야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힐링은 진단도 하지 않고 수술도 안 받겠다라는 얘기거든요. 대충 한 번 가보겠다 라는 얘긴데, 비겁한 담론이죠. 힐링의 수사학이라는 게 그런 거예요. “네 마음만 바꾸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뭐가 달라 보여요? 착각이죠.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고 나서 내가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고, 어떻게 해야겠다는 이런 절차들은 없는 거예요.

사람들이 자꾸 힐링을 하게 되게 되면 힘 있는 사람이나 권력자들은 좋아할 거예요. 노예가 피라미드 쌓다가 힘드니까 돌 옆에 앉아서 “이 일이 내 무덤은 아니지만 가치 있는 일이야. 유네스코에 등재될 건물을 올리는 것이야.” 이러고 있어요. 그게 힐링이거든요. 그런데 그게 어떻게 힐링이죠? 힐링일 수 없어요. 문제를 외면하고 도피하는 거죠. 사람들이 힐링에 빠져드는 것은 편하기 때문이에요. 힐링이 가지고 있는 담론들은 무기력함, 약간의 집중력 없는 상태, 맹한 상태를 유지하죠.
뭐든지 문제가 있으면 냉정하게 진단하고 문제가 어디서 벌어졌는지 정확히 알고, 해결을 해야죠. 용기가 있으면 고칠 것이고 용기가 없으면 방치하는 거예요. “당신 상황이 이렇다. 해결책은 이거다. 책임은 당신이 진다.” 이렇게 사람들을 떠 안아야 되는데, 힐링은 “괜찮아요” 하고 넘어가요. 저는 상담하려는 분에게 본인의 위치를 파악하게 하고 “여기가 뛰어내리는 곳이다. 여기서 뛰어 내려라.”고 말해요. 그런데 못 뛰고 뒤로 물러나면 “너 물러났다. 너 비겁한 걸 알아라.” 고 말해요. 오히려 자신이 비겁한 걸 알고 살아가면 괜찮아요. 왜냐하면 계속 비겁하게 살면 자신한테 화가 나서 언젠가는 용기를 내요.

그런데 힐링은 ‘여기서 뛰면 뭐해? 어차피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지각 변동으로 지층이 올라 올 텐데’ 하는 식이죠. 힘이 없게 만들고, 결단을 어디서 해야 되고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게 만들죠. 그런 것이 편하니까 비겁을 은폐하기도 좋죠. 직접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데 개입할 필요도 없고요. 힐링은 우리가 19세기 이후에 인문학적으로 성취한 것에 비해서 너무 낙후된 개념이죠. 그런데도 그게 먹히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비겁해졌다는 거고, 무기력해졌다는 거를 반영하는 거 같아서 씁쓸하죠. 힐링 중에 또 하나의 메커니즘이 누구를 용서하는 담론이에요. 그런데 용서는 강한 자만 할 수 있는 것이에요. 약한 자가 용서를 하면 포기하는 거죠. 그런데 지금 약한 자들이 용서해요. 용서나 화해는 굉장히 강해졌을 때, 그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을 때 가치가 있는 거에요. 지금은 약자들이 힐링을 해요. 위험하죠. 많이 위험한 담론이에요.

-네이버 캐스트, 철학자 강신주의 서재

한민국 사회는

너무 쉽게 ‘괜찮다’라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얼마나 피폐한 사회인지 잘 알기 때문에 ‘괜찮다’는 한 마디가 얼마나 큰 위로인지 저도 잘 알고 있고, 그 말에 기대 살기도 합니다. 하지만 ‘괜찮다’라는 말은 노력의 끝에 들어야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신주 박사의 말처럼 벼랑 끝에 몰려서 뛰어내려야 하는 순간도 있죠. 뛰어내리기 전까지는 비겁한거 맞아요. 타계할 방법이 분명히 있는데 시도해보지 않은 것이니까요. 그렇지만 벼랑에서 뛰어내려도 꼭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하냐구요? 또 벼랑 끝으로가서 또 뛰어내려야 하죠. 그럴 때 다시 뛰어내려도 ‘괜찮다’가 필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 뛰어내려보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자꾸 비유적인 표현을 하네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할까요? 꿈에 도전하는 것이죠. 사람들은 말해요. 어차피 실패할 것이니 뛰어내리지말고 상처입지말고 포기하라고. 꿈에 도전하는 것이 벼랑에서 뛰어내려보는 것이에요. 뛰어내려도 실패하면 또 뛰어내려야 하는거죠. 성공 확률이 낮으면 그만큼 많은 시도를 하는 방법 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꿈이 없어도 괜찮다, 방황해도 괜찮다라고 말해요. 이건 비겁한거라 생각해요. 꿈이 없어도 괜찮고 방황해도 괜찮은건 그만큼 치열해야해요. 꿈이 없다는 사실에, 방황한다는 사실에 아파야 괜찮은거지, 괜찮다는 말을 믿고 거기에 안주하는 것이 괜찮다는 의미가 아니죠. 우리가 괜찮다고 말해야할 것은 또 상처입어도 괜찮다는 의미지 지금 상태가 괜찮다는 의미로 사용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힐링캠프에서 강신주 박사가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는데 유튜브에서 못찾았네요. 사실, 잔인한 이야기죠. 실패한 사람에게 또 실패하고 또 실패하라고 권유하는 것은요.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강신주 박사의 이야기를 불편해해요. 하지만, 힐링이 만연한 시대에 한편으로 생각해봐야할 부분 아닐까요?

하지만 한편으로 강신주 박사가 간과하고 있는 것도 있다고 생각해요. 비겁한 자신에게 화가 나지 않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 그것도 하나의 용기일지도 몰라요. 또 분노를 바탕으로 움직이면 정작 무엇을 위해 그랬는지를 잊게되기도 해요. (결국 오늘도 아무 도움도 안되는 포스팅으로 마무리될거 같은 불길한 기분…)

어찌됐든 사실 저도 오늘 ‘괜찮다’라는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꿈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지 아니면 사실 현실을 도피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스럽거든요. 강신주 박사의 말처럼 현실을 은폐하려는 꿈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누군가 저에게 지금 그 길을 걸어도 ‘괜찮다’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조금 비겁해보여도 이렇게 마무리할게요.

괜찮아요!

현실이 어쨌든,

당신은 이미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니까요!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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