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인현황후의 남자’ 이야길 하면서
정해진 삶을 사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정해진 삶을 사는 한국 고전은 없을까 생각해봤습니다만
아무래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오이디푸스 왕’이 생각났습니다.
한국 고전은 아니지만 고전이니까!
그러고보니 이상한 일입니다.
저번에는 분명 정해진 삶을 사는 건 인간의 삶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오이디푸스는 정해진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에도
그의 파멸이 너무나 인간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시험 기간에 시작한 뻘짓이 절 괴롭힙니다.
정해진 운명을 알면서도 그 운명을 선택하여 받아들이는 것.
정해진 운명을 알기에 그 운명을 피하는 것.
어느 것이 더 인간다운 삶일까요?
아마도 오이디푸스의 삶을 인간적이라 평가한 것은
자신의 파멸을 알면서도 그 운명을 선택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안정된 자신의 삶을 알면서도 위태로운 삶을 선택한 김붕도 역시
자신의 어려움을 알면서도 선택했기에 인간적인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삶이 위태로운 것은 알 수없는 수많은 실패들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패가 없는 삶이야 말로 인간적이지 못한 삶이 아닐까요?
정해진 삶을 살더라도 그것이 실패 투성이인 삶이라면
그 삶이 결코 편안한 인생이라고 생각되지 않네요.
그리고 그 인생은 충분히 인간적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상처와 실패
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는 인생에서 수 많은 실패를 겪죠.
그리고 그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해요.
그래서 누굴 탓하거나 상황 때문이라고 말하곤하죠.
하지만 실패를 실패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떨까요?
리버풀의 로저스 감독은
축구에서 한골을 만들기 위해선 평균적으로 8번의 슛팅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야구에서는 10번 중에 7번 실패한 3할 타자는 훌륭한 타자죠.
더군다나 3개의 스트라이크가 허용되기 때문에
실제로 3할 타자의 성공률은 더 낮아질 겁니다.
우리는 틀리는 것을, 실패를 두려워하곤 해요.
하지만 수 많은 실패 경험은 다음에 성공할 확률을 높이는 것이라 생각해요.
오늘도 글이 매끄럽지 않네요.
무엇을 전달하려 했을까… 잘 모르겠어요.
사실 오늘 실패를 두려워하는 한국 사회의 풍토를 여러 번 봐서
분노가 차올라 쓴 글이라 그런거 같습니다.
그냥 실패를 두려워하지 한국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오늘도,
다들 파이팅!
입니다.
하지만,
독립 시행이기 때문에
사실은 앞선 실패가 다음번의 성공확률을 늘려주진 않는다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