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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7번방의 선물

 
고전문학과 현대작품의 공통적인 문제의식으로
고전작품에서는 <심청전>,
현대작품에서는 영화 <7번방의 선물>을 선택했습니다.

둘다 장애인, 즉 사회적 약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억울하게 이용당하는 경우입니다.

 

7번방의 선물

 

우선!!!!!!!!!!!!!

영화 예고편을 먼저 보시죠~~

간략하게 줄거리를 말하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지적장애를 가진 ‘용구‘로 예승이의 아빠이다.

용구는 예승이에게 세일러문 가방을 선물해주고 싶어했지만

마지막 하나 남은 가방은 경찰청장의 딸 지영에게 판매되었다.

지영이가 그 가방을 판매하는 다른 곳을 안내하던 중

바닥 얼음에 미끌어 넘어지면서 죽게된다.

용구는 이런 지영이를 살리기 위해 인공호흡 및 혈액순환을 위해 바지를 푸르는데

이를 본 다른 사람은 성폭행 한 뒤 살해한 것으로 착각한다.

이렇게 용구는 누명을 쓴 채 7번방에 수감된다.

7번방의 수감자들이 용구의 억울한 누명을 벗길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사형을 선고받고 억울하게 죽음을 맞는다.

예승은 나중에 커서 모의재판에서 용구의 무죄판결을 받아내면서 영화가 끝이 난다.


 
 

여기서 주의깊게 볼 것이

경찰청장(권력자)의 힘 때문에 억울하게 사형을 당한 용구!

이뿐만 아니라

1%인 사회적 약자인 용구에 대한

이 사회의 대다수 평범한 99%의 사람들의 태도

 

에 초점을 두고

앞으로 <심청전>과 비교해 볼것입니다.

 
 

‘심청전’ VS ’7번방의 선물’

 

여기서는

고전문학 <심청전>과 현대 영화<7번방의 선물>

에서 나타는는 공통된 문제의식

사회적 약자에게 대하는 태도

를 비판하며 이 외에도 <심청전>과 <7번방의 선물>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차이점과 한계 등에 대해서 말할 것입니다.

 
 

먼저 공통점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고전문학 <심청전>

은 모두가 아실 것이라고 생각해서 줄거리는 생략하고…

<심청전>에서 심봉사는 이름 그대로 앞이 안보이는 장님입니다.

<심청전>에서는 이러한 신체적 장애를 갖고 있는

심봉사를 이용하는 듯한 장면이 여러 나옵니다.
 
첫째

스님

스님 : “부처님께 공양미 삼백 석을 바치면 앞을 볼 수 있을텐데…”

심봉사: “앞을 볼 수만 있으면 부처님께 공양미 삼백 석을 바치겠소.”

 

론!! 스님이 일부러 공양미 삼백 석이 탐나서

짓말을 했다고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지만 결과적으로 심봉사의 눈은 그대로이고

님은 공양미 삼백 석을 받아갔습니다.

이는 약자를 이용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둘째

뺑덕어멈2

뺑덕 어멈은 심봉사 몰래 심청이가 공양미 삼백 석 이외에 받은

재산들을 몰래 빼돌리고 달아나 버립니다.

즉, 앞이 안보이는 심봉사를 속이고 이용하는  인물입니다.

 

 

영화 <7번방의 선물>에서

 

래의 동영상은 용구의 딸 ‘예승’이가

신의 아버지를 변호하는 모습입니다.

 

동영상에서도 잘 나와있듯이

신의 의사표현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지적장애인 용구를

찰은 거짓자백을 하도록 강요하고 협박했습니다.

한 모든 증거들도 무시해버렸습니다.

만약  용구가 지적장애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었어도 이렇게까지 대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의사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니까 자신의 편익을 위해서
증거들을 무시하고 거짓자백을 받아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차이점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심청전>에서는 문제해결이 기적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심청전

 

심청은 눈물을 흘리며 심봉사의 손을 잡았어요.

심청 : ” 저 청이에요. 아버지 눈 좀 떠 보세요.”

그러자 심 봉사가 눈을 번쩍!

심봉사 : “아이쿠, 보인다. 내 딸 청이가 보여!”

위와 같이 심봉사의 문제가 기적적으로 해결됐습니다.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이며, 이는 근본적인 해결이 아닙니다.
또한 심봉사를 이용했던 사람들의 사과나
그 이후에 대한 태도가 없습니다.

즉, 허구적인 요소를 사용하여, 문제가 해결했다기 보다

사회적약자인 1%였던 사람을

현재 대부분의 99%의 사람으로 만들어주면서 끝이났습니다.

 

<7번방의 선물>에서는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론 이미 사형당한 용구가 살아오지도 않고

적장애가 갑자기 없어지지도 않았습니다.

따라서, 각자 시선에 땨라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저희는 문제의식으로 1% 소수자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를 뽑았습니다.

 위의 동영상에서도 나타나있듯이

사형선고를 받은 재판을 번복했습니다.

비록 이미 사형집행 당했지만

법원은 그 때에 잘못했던 점에 대해 인정하고

‘용구’는 억울함을 풀었습니다.

따라서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하고

이러한 해결방법에서 <심청전>과 차이가 납니다.

 
 

다음으로 한계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심청전>

앞에서 말했다시피

문제해결이 기적적으로 일어났습니다.

또 1%였던 사람이 99%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갔습니다.

1%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해결방법이 아닙니다.

+이는 <춘향전>에서 춘향이가 신분이 올라간 것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7번방의 선물>

법원이 판결을 번복했지만

이미 되돌리기 너무 늦었습니다. (이미 용구가 사형 당함)

또한 문제 해결이 용구에게 한정되었습니다.

다른 약자들이 이러한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습니다.

또한 문제해결을 이끌어나가는 과정
‘예승’, 즉 1% 소수의 가족들에 의해서 해결이 됐습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했고

99%의 일반 사람들이 1%에 대한 시각이 바뀌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정리하면

<심청전>과 영화 <7번방의 선물>의 공통된 주제의식으로

“99%가 1%의 사회적 약자에 대하는 태도가 불합리하다”

입니다.

 

공통점으로

심청전

  1. 공양미 삼백 석을 주면 심봉사의 눈이 떠진다고 함.
  2. 뺑덕어멈이 심봉사의 재산을 몰래 빼돌림.

7번방의 선물

  1. 의사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지적장애인에게 거짓자백을 강요함.
  2. 법원에서 장애인에게 유리한 증거들은 모두 무시함.

차이점으로

심청전

  1. 심청전에서는 문제해결이 기적적으로 일어났다.
  2. 심봉사를 이용했던 사람들에 대한 태도 변화가 없다.

7번방의 선물

  1. 한 사람의 노력으로 판결이 번복됐고 법원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한계로는

심청전

  1. 심청전에서 문제가 기적적으로 일어났다. 즉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2. 1%가 받는 불이익을 해결했다기 보다 사회적 소수(1%)였던 심봉사가 눈을 뜨면서  사회적 다수(99%)가 되면서 끝이 났다.

7번방의 선물

  1. 법원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지만 이는 용구 개인에 해당한다.
  2. 해결을 1%의 가족들이 이끌어냈다. 즉, 99%의 태도가 자발적으로 변한 것은 아니다.

 

1%의 소수자장애인 뿐만 아니라
저소득계층, 외국인 근로자, 다문화 가족, 성소수자 등등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1%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 근본적인 이유는
99%의 사람들의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즉, 우리가 편견을 버리고 동등하게 생각하면
이러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봅니다.
더불어 국가가 나서서 제도적으로 보안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시선’이 아닐까 합니다.